영화 <행복한 라짜로>, 신비롭고 감동적인 판타지 영화 - 우주영화연구소
영화 리뷰 / / 2022. 11. 13. 16:43

영화 <행복한 라짜로>, 신비롭고 감동적인 판타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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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이탈리아 영화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2018년 5월 31일 이탈리아에서 개봉하고 우리나라에는 2019년 6월 20일 개봉한 판타지 장르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는 35개의 개봉관에서 상영될 정도로 소규모로 개봉되었고,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영화였지만 총 관객수 1만 5천 명이 넘게 들으면서 상당히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이탈리아 출신 알리체 로르파케르이다. 그녀는 2014년 영화인 더 원더스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바 있는데, 이 영화 또한 리얼리즘과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섞여 있는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라짜로 역은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가 맡았다. 그는 고등학생으로서 이 영화에 캐스팅되어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이 영화에서 어른 안토니오 역은 알바 로르파케르가 연기했는데, 그녀는 감독 알리체 로르파케르의 언니이다. 이 영화에서 후작부인 역은 니콜레타 브라스키인데, 그녀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도라 역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로베트로 베니니 감독이 연출한 영화 호랑이와 눈 이후로 15년 만에 영화에 출연했다.

순수한 청년 라짜로의 부활

이탈리아의 산간 마을 인비올라타에는 마을 사람들이 담배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 마을은 알폰시나 데 루나 후작부인이 지배하고 있고, 마을 사람들은 후작부인의 소작농으로서 농사를 지으면서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후작부인에게 농사로 인한 매출을 모두 빼앗기는데, 반대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청년 라짜로를 착취하고 부려먹는다. 마을 사람들은 짐을 나르는 일이나 청소를 하는 일이던 간에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라짜로에게 시킨다. 라짜로는 마을 사람들이 시키는 일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웃으면서 실행한다. 어느 날 후작 부인의 아들 판크레디가 라짜로에게 찾아온다. 판크레디는 누군가로부터 납치되었다고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라짜로의 은신처에서 지낸다. 판크레디는 라짜로에게 이복동생이라면서 새총을 건네면서 우정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라짜로는 판크레디에게 음식물을 가져다 주고 판크레디의 요구사항을 그의 어머니에게 전달한다. 라짜로는 어느 날 열병에 걸려 판크레디에게 찾아가지 못했고, 길을 잃고 헤메다 절벽에서 떨어진다. 그 사이 마을에는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후작부인이 가짜이고, 소작농 제도는 불법이면서 후작 부인을 감옥에 보내고 마을 사람들을 도시로 이주시킨다. 그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라짜로는 절벽 아래에서 깨어났고, 마을이 텅 빈 것을 알아냈다. 이제 라짜로는 도시로 가서 예전에 같이 살았던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마을 사람들은 수십 년전과 똑같은 외모를 유지하고 음식도 먹지 않는 라짜로를 유령이라 여긴다. 라짜로는 판크레디도 다시 만나지만 판프레디도 역시 늙었고, 경찰이 모든 재산을 압수했기에 판크레디는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라짜로는 도시에서 마을 사라들과 판크레디와 함께 살아가는데, 과연 라짜로의 정체는 무엇일까. 순수한 청년 라짜로는 정말 부활한 것일까.

구세주가 와도 해결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착취   

이 영화는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먼저 메타크리틱은 100점 만점에 87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고, 로튼 토마토의 신선도 지수 역시 91%나 된다. imdb의 유저들도 평점 7.6점으로 좋은 점수를 주었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네이버 평점 기준 8.66점을 주었는데, 관객들은 예수가 현대에 재림한 슬픈 현실을 그린 영화라거나 동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을 더 슬프게 한다며 호평을 했다. 전문가들 또한 10점 만점에 8.4점으로 매우 높은 점수를 주었다. 전문가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결 같이 밝은 얼굴을 유지하는 라짜로의 연기가 좋았고, 그의 연기로 인해 모순이 많은 현실에 대한 고발이 더 처절하다는 점에서 감동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 영화는 구세주가 와도 해결할 수 없는 자본주의를 고발하고 있다. 농민들은 봉건제도 속에서는 후작 부인의 착취를 당하고 있었고, 도시로 이주해서도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최하층민으로서 착취를 당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농민들은 착취를 당하면서도 더 약한 존재인 라짜로를 똑같은 방식으로 착취한다. 라짜로는 수십 년 만에 다시 부활했고, 농민들에게 음악을 가져다주며 기적을 보여줬지만 현실을 바꾸는 데는 실패한다. 오히려 시민들에게 핍박당하며 몰매를 맞는다. 이 영화는 구세주가 와도 해결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착취를 그리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에는 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글로써 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 영화는 초반부에는 지루하지만 뒤로 갈수록 흥미를 더하며 영화를 보고 나서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명작이다. 신비롭고 감동적인 판타지 영화인 이 작품은 왓차를 통해서 관람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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